ARCHIVES

도카타 타츠미와 암흑 무도파 관련 ◎포스터전

전시회 개요프로필회장 풍경

프로필

도카타 타츠미(히지카타·타츠미)

1928년 3월 9일 아키타~86년 1월 21일 도쿄본명은 모토토 9일생.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무도의 창시자로 ‘암흑무도’라는 새로운 표현 형식을 확립했다.아키타 공업학교를 졸업 후, 아키타 시내에서 마스무라 카츠코(에구치 타카야몬시타)에 대해서 독일식의 노이에·탄츠를 배운다

24세에 상경, 안도 미코 무용 연구제에 입문, 모던 댄서로 데뷔했다.그 무렵, 오노 가즈오의 무대에 만난 것과, 적빈 속에서 장 주네의 작품을 탐독한 경험은, 청년 도카타 타츠미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1959년에 '금색'을 발표,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미시마 유키오와 알게 되었고, 또한 시부사와 류히코, 타키구치 슈조 등과의 교우가 시작되었다.‘안마’ ‘장미색 댄스’ 등 60년대 작품은 남성 무도수에 의한 도착적 에로티시즘과 도발적인 폭력을 느끼게 하는 작풍으로, 기성의 무용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육체 표현의 생성에 노력했다.

그러나 68년의 「육체의 반란」의 무대를 경계로 크게 변화해, 70년대는 엄한의 풍토가 자라는 일본인의 육체에 무도의 기반을 찾아 《번제희대답감》이라고 씌운 일련의 작품을 만들었다.'사계절을 위한 27밤', '조용한 집'의 공연은 특히 '도호쿠 가부키'라고도 불리며, 무게 중심을 낮게 가니 또 춤추는 독특한 양식을 완성시켰다.

1974년 이후에는 연출·안무에 전념해 스스로 무대에 서지 않았다.‘무도란 목숨을 걸고 찌른 시체다’ 등 많은 명언을 드러내며, 사회의 이면사와 일상의 배후에 묻힌 몸짓이나 기억을 작무하는 것에 ‘암흑’의 의미를 담았다.지금까지의 서양무용의 대부분이 육체를 발전적으로 파악해 힘의 다이너미즘으로 춤을 구성하는데 비해, 토카타는 해체되어 쇠약하게 향하는 육체의 움직임에 아름다움을 찾아냈다.이는 획기적인 관점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문학 미술 철학 연극 음악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만년에는 젊은 사람들의 육성에도 힘을 쏟아 부어 쓰러지기 직전까지 「도호쿠 가부키 계획」의 구성, 연출을 했다.

주저에 '개의 정맥에 질투하는 것으로부터'(76년), '병든 마이히메'(83년), 사진집에는 호소에 히데코의 '가마고'(69년)가 있다.72년과 76년도의 무용비평가협회 빈을 수상했다.

(도카타 타츠미 기념 석면관 홈페이지에서)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