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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 MESSENGER & CROSS SECTION : THE WORK OF PATTI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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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스미스는 뮤지션이자 시인이자 배우이기도 하다.‘펑크 록의 여왕’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지만, 그녀는 다방면에서 다양한 예술과 인연을 맺어왔다.어린 시절의 패티는 성홍열이나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허약 체질의 아이로 침대에 잤다고 하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그런 그녀의 마음의 위로가 된 것이 독서와 음악이었다.성경, 코믹, 동화 등을 읽고 《아라비안 나이트》, 《버드나무에 바람》, 《피터 빵》, 《젊음물어》 등의 책에 열중했다.또, 라디오에서 흐르는 로네츠나 리틀 리치야드 등의 로큰롤도 그녀를 몰입시켰다.뉴저지의 하이스쿨에 다니는 16살 때, 그녀는 알튀르 랑포의 시를 만난다.격렬한 그의 시와 그 처절한 치열한 인생은 이웃집 죽음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며 고뇌와 삶을 사는 그녀의 마음을 풀어냈다.람보를 마음의 영웅으로 삼아 그녀 또한 홀린 것처럼 시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는 패티 스미스
자신의 작품 앞에 서는 패티 스미스 (C)Taka Kawauchi

람보에 의해 프랑스 문학에 눈을 뜬 그녀는 베르렌이나 보드레르, 아르토를 알고, 또 장학금으로 매주 토요일의 아트 코스를 수강하기 시작해 피카소나 모지리아니와 플랑타시(20세기 초 스위스 조각가) 등의 회화와 조각에도 눈을 떴고 스스로도 회화와 조각의 창작에 도전하게 된다.깡마른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지만, 모질리아니의 그림에 등장하는 마른 여자들의 포트레이트를 보고 나서는 그 그림을 잘라내고 거울 앞에서 모질리아니의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가장 큰 영웅이 롤링 스톤즈였다.그 중에서도 브라이언 존스에게 푹 빠져 있던 그녀는 69년 5월 파리에서 고다르의 영화 ‘원 플러스 원’을 보고 그곳에 비친 브라이언의 쇠약해진 모습에 충격을 느낀다.그날 밤, 그녀는 브라이언의 장례식 꿈을 꾸었다.2개월 후, 브라이언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67년 봄, 글래스버러 스테이트 티처스 칼리지에 재학 중인 18세 때 대학교수와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하지만, 생활을 위해 사토코에게 내고, 불과 16달러를 쥐고 뉴욕에 온다.잠시 후 북스토어의 점원의 일을 얻은 피녀는 아트 클래스를 수강하고 다시 조각과 회화에 나서기 시작하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며 우연히 같은 나이(19세)였던 로버트 메이블소프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브루클린의 싼 아파트에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나중에 메이플소프는 패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간과도 달랐다.만약 그녀가 예술을 찾지 못했다면 정신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패티는 "로버트는 내 안에 있던 에너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그는 나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을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Handyman Strike
Handyman Strike (C)Patti Smith/The Andy Warhol Museum
메이플소프는 파티에게 작은 사파이어와 골드의 약혼반지를 보낼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성적인 관계의 불일치로 패티는 새롭게 하위 마이클이라는 화가와 사귀기 시작한다.아파트를 나가려는 패티에게 메이플소프는 “가지 마세요!”만약 네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게이가 된다!”고 애원했다고 한다.하지만 패티는 그의 곁을 떠나고 메이플소프는 그 말대로 게이가 되어버린다.하지만 패티와 메이플소프의 관계는 그 후에도 남녀의 성을 초월한 예술가끼리의 우정으로 굳게 맺어졌다.머지않아 두 사람은 맨해튼에 있는 첼시 호텔에서 공동 생활을 시작한다.그것은 서로 다른 연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초월적 관계의 시작이며, 첼시 호텔에서의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만남의 시작이었다.패티와 로버트가 이주한 1969년에는 앤디 워홀, 자니스 조플린, 윌리엄 바로우즈, 짐 모리슨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출입하고 있었다.주민들은 서로의 방을 오가며 예술적인 논의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파티는 첼시의 방이나 「맥시즈 캔사스 시티」를 테리토리로, 유명인과도 차례차례 만남을 거듭해 갔다.

1970년에 만난 극작가 샘 셰퍼드(영화배우로도 유명)에게 패티는 사랑을 했다.원래 홀리 모글 라운더스라는 앙굴라 밴드의 드러머였던 샘은 극작가로서 25살에 이르는 작품을 공연하고 안토니오니의 영화 모래 언덕의 각본에 참여하거나 재능이 넘치는 잘생긴 청년이었다.샘에게는 아내와 6개월 된 아들이 있었지만, 첼시의 패티 로프트에서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샘은 나에게 무엇이든 적어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파티는 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카우보이 마우스'라는 극을 함께 써내려 1971년 4월 29일, 아메리칸 플레이스 극장에서 공연한다.파티의 역은 검은 옷차림을 단 카브에일이라는 까마귀를 닮은 여자그 극찬을 받아 여배우/극작가 패티 스미스의 탄생을 생각하게 했지만, 드래그 중독과 불륜애에 참지 못한 샘은 패티를 떠나 아내와 함께 런던으로 건너간다.

샘과의 이별 후에도 패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거나 영화에 출연하거나, 《크림》지로 에릭 클랩튼에 인터브유하거나 메이플소프의 사진전에 회화로 참가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예술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은 없는 유명인이 되었다.1973년경 그녀가 가장 열중했던 것은 시작이었다.이미 여러 극에서 시 낭독 같은 일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본격적으로 포에트리 리딩을 할 것을 권한 것은 첼시의 주민 제럴드 마랑가였다.일찍이 브엘브에츠트 언더그라운드의 스테이지에서 채찍을 흔들며 춤추고 있던 시인이자 사진작가는 세인트 막스 처치에서의 시 낭독회에 파티를 출연시킨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작시를 소리내어 읽는 행위는 단순히 종이 위에 시를 쓰는 것 이상의 엑스터시를 그녀에게 가져온 것 같다.이후 그녀는 공원이나 커피·하우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시 낭독을 전개해 나간다.
Untitled nd
Untitled nd (C)Patti Smith/The Andy Warho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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